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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모델의 두 계보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70년 역사를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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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월드모델에 두 계보가 있다는 이야기를 썼다. 데이터로 배우는 뉴럴 계보와, 사람이 규칙을 적어두는 심볼릭 계보. 그런데 쓰고 나서 스스로도 좀 아쉬웠다. 각각이 어디서 시작해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빼놓고 결론만 이야기한 셈이라서다.

역사를 알면 이해가 훨씬 쉬워진다. 두 계보 모두 처음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았고, 벽에 부딪힐 때마다 방향을 틀면서 지금 모습이 됐기 때문이다. 그 벽이 뭐였는지를 알면 왜 지금 이런 구조가 됐는지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배경지식 없이 읽을 수 있게 써보려 한다.

시작은 같은 질문이었다

두 계보는 사실 같은 질문에서 갈라졌다.

출발점은 같은 질문 하나였다

같은 질문에 두 가지 답이 나왔고, 그 갈림길에서 70년이 흘렀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기계 안에 어떻게 넣을 것인가.”

한쪽은 “사람이 규칙을 적어주면 된다”고 답했다. 다른 쪽은 “기계가 보고 스스로 배우게 하면 된다”고 답했다. 이 갈림길에서 출발한 두 길이 지금 다시 만나고 있는 중이다.

먼저 적어 넣는 쪽부터 보자.

심볼릭: 적으려다 계속 범위를 좁혀온 역사

심볼릭 계보의 연표

벽에 부딪힐 때마다 적을 범위를 좁혀왔다.

1단계. 논리로 적으면 되지 않을까 (1950~60년대)

처음 생각은 단순했다. 세계에 관한 사실을 논리 문장으로 적어두면 기계가 그걸 조합해서 추론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새는 날 수 있다”, “참새는 새다” 두 문장을 넣어두면 “참새는 날 수 있다”가 저절로 나오는 식이다.

2단계. 행동을 적기 시작하다 (1971)

큰 전환이 여기서 일어난다. 스탠퍼드 연구소(SRI)에서 Shakey라는 로봇을 움직이려고 만든 STRIPS라는 시스템이 행동을 적는 방법을 정리했다. 방식은 이렇다.

문 열기 전제조건: 문 앞에 있어야 하고, 문이 잠겨 있지 않아야 한다 효과: 문이 열린 상태가 된다

사실을 적는 것에서 행동을 적는 것으로 넘어간 것이다. 지금 쓰는 계획 언어들의 조상이고, 앞선 글에서 말한 “어떤 변화가 허용되는가”라는 축이 여기서 태어났다.

그런데 벽에 부딪힌다. 문을 열었을 때 무엇이 바뀌는지는 적기 쉬운데, 무엇이 바뀌지 않는지를 적는 게 문제였다. 문을 열어도 방 색깔은 그대로고, 내 위치도 그대로고, 다른 문들도 그대로고, 창문도 그대로다. 이걸 다 적어야 기계가 헷갈리지 않는데, 세계가 조금만 커져도 “안 변하는 것” 목록이 감당이 안 되게 늘어난다. 이걸 프레임 문제라고 부른다.

3단계. 세계 전체는 포기하고 좁은 분야만 (1970~80년대)

그래서 목표를 낮춘다. 세상 전부는 못 적겠으니 아주 좁은 분야만 적자는 것이다. 혈액 감염 진단이라든가, 컴퓨터 주문 사양 맞추기라든가. 이걸 전문가 시스템이라고 불렀고, 실제로 돈을 벌었다. 기업들이 앞다퉈 도입했다.

그런데 여기서도 벽이 온다. 규칙이 수백 개일 때는 괜찮았는데 수천 개가 넘어가자 아무도 손을 못 대게 됐다. 예외를 처리하려고 규칙을 추가하면 그 예외의 예외가 또 나오고, 규칙 하나를 고치면 어디가 깨지는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유지비를 감당 못 해 많은 시스템이 버려졌고, 이게 1980년대 말 이른바 AI 겨울의 큰 원인이 됐다.

4단계. 표준을 만들어 나눠 쓰자 (1990~2000년대)

다음 아이디어는 협업이었다. 각자 만든 지식을 서로 쓸 수 있게 표준을 만들자는 것이다. RDF와 OWL 같은 표준이 이때 나왔고, 웹 전체를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들자는 시맨틱 웹 기획으로 이어졌다.

여기서도 막힌다. 아무도 태그를 달지 않았다. 웹페이지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계가 읽으라고 별도 표시를 해줄 이유가 없었고, 애초에 열린 세계 전체를 명세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5단계. 실용적으로 물러서다 (2012~)

구글이 지식 그래프를 내놓으면서 흐름이 바뀐다. 완벽한 논리 추론은 접고, 검색 결과 옆에 인물 정보 카드를 띄우는 정도의 실용적인 목표로 후퇴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오히려 살아남았다.

그리고 학계 논쟁과 상관없이, 좁고 실패 비용이 큰 곳에서는 이 방식이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의료 용어 체계, 금융 데이터 표준, 공장의 디지털 트윈, 결제 시스템의 주문 상태 관리 같은 것들. 아무도 이걸 월드모델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뿐이다.

뉴럴: 그리려다 계속 그릴 것을 줄여온 역사

이제 반대쪽 길이다.

뉴럴 계보의 연표

이쪽은 무엇을 예측할지를 계속 줄여왔다.

1단계. 뿌리는 AI가 아니라 공학이었다 (1960)

의외지만 이쪽 조상은 AI가 아니라 제어공학이다. 칼만 필터라는 게 있는데, 구조를 보면 완벽한 월드모델이다.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수식으로 적어두고, 불완전한 관측값으로 지금 상태를 추정하고, 다음에 어떻게 될지를 예측한다. 아폴로 우주선에 실려서 달까지 갔다.

한계는 명확했다. 그 수식을 사람이 써야 한다. 로켓의 궤적은 수식으로 쓸 수 있지만, “부엌에서 컵을 집는 세계”는 수식으로 못 쓴다.

2단계. 그럼 수식을 학습시키자 (1990)

그렇다면 그 수식 자체를 신경망이 데이터에서 배우게 하면 되지 않겠나. 아이디어는 1990년쯤 이미 나왔다. 방향은 맞았는데 시대를 너무 앞섰다. 그 시절엔 계산할 컴퓨터도, 학습시킬 데이터도 없었다.

3단계. 이름이 붙은 순간 (2018)

이 분야에 월드모델이라는 이름을 준 논문이 2018년에 나온다. 구조가 아주 직관적이라 소개할 만하다. 부품이 셋이다.

부품하는 일사람으로 치면
첫 번째화면을 작은 숫자 덩어리로 압축눈
두 번째다음에 올 숫자 덩어리를 예측기억과 상상
세 번째그걸 보고 무엇을 할지 결정손

눈으로 보고, 다음을 상상하고, 행동한다. 여기서 가장 유명한 대목은 상상 속에서 학습시켰다는 것이다. 실제 게임 환경에서 연습시키는 대신, 모델이 상상해낸 가짜 세계 안에서 에이전트를 훈련시켰더니 그게 실제 환경에서도 통했다. 앞선 글에서 “월드모델은 학습 데이터를 만드는 공장”이라고 했던 아이디어의 원형이 이거다.

4단계. 쓸 만한 물건으로 (2019~2023)

이 레시피를 다듬어서 실제로 어려운 문제를 푸는 수준까지 끌어올린 게 딥마인드의 Dreamer 계열이다. 최신 버전은 설정 하나로 150개가 넘는 서로 다른 과제를 푼다. “상상 속에서 배운다”는 아이디어가 실험실 데모에서 실용 기술로 넘어온 지점이다.

5단계. 다 그릴 필요 없다는 깨달음 (2020~)

여기가 재미있는 갈림길이다. 화면을 그대로 복원하려면 비용이 엄청나게 든다. 나뭇잎 하나하나가 어디로 흔들릴지까지 맞혀야 하니까. 그런데 게임에서 이기는 데 나뭇잎 위치가 필요한가?

MuZero라는 모델은 화면 복원을 아예 포기하고 결정에 필요한 것만 예측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더 잘했다. 르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픽셀 예측을 완전히 버리자고 주장한다. 픽셀에는 예측할 필요도 없고 예측할 수도 없는 디테일이 너무 많으니, 좀 더 추상적인 수준에서 예측하자는 것이다.

6단계. 그런데 반대 흐름이 등장한다 (2024~)

픽셀을 버리자는 이야기가 나오던 참에, 픽셀을 통째로 그려내는 영상 생성 모델들이 놀라운 결과를 내기 시작했다. 텍스트로 묘사하면 걸어 다닐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주는 것들이다.

그래서 지금 뉴럴 계보 안에서도 의견이 갈려 있다. 픽셀을 그릴 것인가, 버릴 것인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논쟁이다.

두 계보는 거울상으로 닮았다

이렇게 늘어놓고 보면 재미있는 게 보인다.

두 계보는 거울상으로 닮았다

둘 다 무엇을 포기할지를 배워온 역사다.

심볼릭은 다 적으려다 못 적어서 적을 범위를 계속 좁혀왔다. 세계 전체에서 한 분야로, 한 분야에서 한 업무로.

뉴럴은 다 그리려다 너무 비싸서 그릴 대상을 계속 좁혀왔다. 화면 전부에서 필요한 것만으로, 필요한 것에서 추상적인 표현으로.

방향은 반대인데 하는 일은 같다. 무엇을 포기할지 배워온 역사다. 처음에는 둘 다 세계 전체를 담으려 했고, 둘 다 실패했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욕심을 줄이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지금 왜 만나는가

두 계보가 요즘 함께 언급되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AI가 행동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AI에게 시킨 일은 대부분 읽는 쪽이었다. 요약하고, 분류하고, 답변을 만드는 일. 이럴 때는 넓게 읽는 능력만 있으면 됐고, 그건 뉴럴 계보가 잘한다.

그런데 에이전트가 주문을 취소하고 환불을 승인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넓게 읽는 능력만으로는 부족하고, “이건 해도 되고 저건 안 된다”를 확실하게 지켜주는 것이 필요해진다. 그건 심볼릭 계보가 70년 동안 다듬어온 일이다.

각자 포기한 자리가 서로 정확히 반대편이라, 붙여놓으면 서로의 구멍을 메운다. 요즘 뉴로심볼릭이라는 말이 자주 들리는 이유가 이거다.

개인적인 견해

두 역사를 나란히 정리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실패의 기록이 이렇게 유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전문가 시스템이 왜 무너졌는지를 알면, 지금 프롬프트에 규칙을 계속 덧붙이다가 어느 순간 손을 못 대게 되는 상황이 낯설지 않게 보인다. 사실 같은 문제다. 시맨틱 웹이 왜 실패했는지를 알면, 전사 데이터를 통째로 정리하겠다는 계획이 왜 매번 흐지부지되는지도 짐작이 간다. 좁게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훈은 이미 30년 전에 나왔다.

AI 분야가 워낙 빠르게 움직이다 보니 모든 게 처음 겪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많은데, 실제로는 이미 한 바퀴 돌아본 문제가 꽤 된다. 새로 나온 도구를 익히는 것만큼이나 이런 역사를 아는 게 실무에서 쓸모가 있다고 느낀다. 적어도 어디서 넘어질지는 미리 알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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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본 글은 2026년 8월 1일 기준으로 작성했다. 70년치 흐름을 짧게 줄이다 보니 중요한 연구들이 많이 빠졌고, 연도도 대표적인 시점을 골라 적었다. 큰 흐름을 잡는 용도로 읽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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